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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일 경북 산불 피해지서 구호활동
동물보호 단체연합 루시의친구가 설치한 구호용 개집 모습. 견주의 동의를 얻어 개체수 증식을 예방하는 중성화 및 질병 예방접종을 앞두고 있다. 전병준 기자

지난 12일 경북 안동 신흥리. 동물보호 연합단체인 루시의친구들 소속 활동가들과 함께 찾은 마을은, 화마가 덮친 지 한달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폐허처럼 보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의 좌우로는 불에 탄 채 뼈대만 남은 집터와 숯덩이가 된 고목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난 3월 경북 지역을 덮친 초대형 산불이 남긴 상처였다.

마을 주택 42채 중 28채는 전소한 상태였다. 갈 곳이 없어진 주민 일부는 마을회관에, 나머지는 수십㎞ 거리의 임시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잿더미만 남은 집터를 매일 찾는 이들이 있었다. 폐허 속에 두고 온 마당개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활동가들은 전소한 집 마당에서 6살 황구 ‘성공이’와 1살 보더콜리 ‘심바’를 돌보는 주민 심규호(43)씨를 만났다. 임시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는 심씨는 매일 왕복 60㎞ 거리를 오가며 개들을 챙기고 있었다.

동물구조 연합단체 루시의친구들이 산불 피해가 컸던 안동 신흥리의 주민 심규호씨를 만나 마당개의 사육환경을 개선해주고 있다. 전병준 기자

심씨는 불이 났을 때 성공이와 심바를 마당에 둔 채 대피했다고 한다. 심씨가 개들을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심씨와 두 견공은 함께 마을의 반려견 순찰대에 선정될 만큼 유대가 깊은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산불이 덮치던 순간 심씨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지적장애를 앓는 친척들을 데리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다행히 영리한 성공이와 심바는 땅을 파고들어 불길을 피했다. 문제는 화재가 진압된 뒤 생겼다. 개들이 지낼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피소 규정상 반려동물은 입소할 수 없었다. 심씨는 “아끼는 개들을 화재 현장에 두고 떠나야 해서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활동가들이 신흥리를 찾은 이유도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없는 국내 대피소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 방문을 위해 루시와친구들은 주민들에게 건넬 라면·식수와 함께 집을 잃은 반려동물을 위한 개집과 사료 등을 차량 가득 챙겼다. 심씨는 “대피소 생활을 하느라고 변변한 사료를 구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며 “동물단체가 지원해줘서 큰 힘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동물단체를 향해 사람부터 챙기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지만 반려동물을 챙기는 게 곧 사람을 챙기는 일이라는 건 피해 현장에 나와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고마워하는 건 주민들이었다.

마당개 4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이웃 주민 우길순(67)씨도 개집과 사료를 지원받았다. 우씨는 이번 화재로 남편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은데다 사과 8000박스를 보관하던 창고가 불타면서 생계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와중에 개들까지는 돌보지 못해 고민하는 상황이었다고. 우씨는 “개들이 아픈데 내가 데리고 병원에 갈 형편이 아니다. 치료도 못해주고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면서 “대신해서 개들을 돌봐주니 고맙다”고 전했다.

루시의 친구들은 산불 피해 주민 50여명에게 구호 용품을 전달하고, 마당개 번식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중성화 동의 서명을 받았다. 전병준 기자

이날 활동은 루시의친구들이 산불 피해가 컸던 경북 지역의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돕기 위해 마련한 ‘1미터 해방’ 활동의 일환이다. 산불을 통해 드러난 농어촌 지역의 열악한 마당개 사육환경을 개선하는 걸 목표로 했다. 마땅한 보호시설 없이 화재 현장에 방치된 마당개들을 돕는 한편으로 보호자들에게 올바른 사육환경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기준을 알리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활동가 50명은 12·13일 이틀에 걸쳐 피해 마을 10여곳을 돌며 개량된 개집, 안전한 와이어 목줄, 3개월 치 사료를 나눠줬다. 피해 주민에게는 라면, 식수 등 구호물품도 함께 전달했다.

현장 구호활동과 함께 중성화 지원 활동도 벌이고 있다. 마당에 묶어놓은 채 키우는 실외견의 경우 무분별한 번식으로 견주가 감당하지 못할 규모로 개체수가 늘어나거나 질병이 유행하는 2차 피해가 큰 상황이다. 루시의친구들은 피해 마을과 대피소 등을 방문해 견주들로부터 중성화 동의 서명을 받은 뒤 다음달 8일 버려진동물을위한수의사회의 도움으로 안동과학대에서 이 개들에 대한 중성화 및 예방접종을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동의한 견주는 50여명. 동물구조단체 코리안독스 김복희 대표는 “동물단체가 무료로 마당개를 옮겨 중성화를 진행해준다는 소식에 주민들 호응이 좋다”면서 “지원 대상을 100마리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루시의친구들은 6개 동물단체가 모인 연합 단체로, 경북 산불 이후 재난 지역 전역에서 탈출하지 못한 마당개 180마리를 구출하는 등 실외견 구호활동을 해왔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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